비밀 아닌 비밀일기

50대 후반의 나이에 재취업에 성공하다.

mareluce 2025. 4. 11. 16:23

참 다사다난한 삶이었다. 
20대 초의 어린 나이에 실질적 가장이 되었다. 그나마 운이 좋아 설계 사무실에 취업이 되어 설비 설계를 배울 수 있었다. 90년대 초 그때만 해도 전공이니 뭐니 상관없이 설계는 아무나 배워서 하면 되던 시절이었다. 

난 동네 아줌마가 소개해 준 호텔 건설 현장에서 경리 업무를 보고 있었는데 현장에 드나들던 설계 사무실 소장님이 날 스카우트 했다. 번듯한 사무실도 없이 가정집에서 부부가 같이 설계 사무실을 내고 제도판 두개만 갖다 놓고 작업하는 곳이었다. 그 거실에 제도판 하나 더 갖다 놓고 트레이싱지에 선긋기부터 배워나갔고 불과 몇년만에 사무실 직원이 10명이 넘는 사업체로 성장했다. 난 창립 멤버이다 보니 어린 나이에 과장까지 승진(?)했고 건축설계 사무실과 관공서를 아울러 다니며 사무실의 전반적인 관리를 도맡았더랬다. 
그렇게 일을 배우다 자격증의 필요성을 알게되어 회사를 그만두고 자격증을 취득하게 되었다. 
전기공사기사, 소방설비기사 기계 분야 및 전기분야의 자격증 3개. 
그러나 결혼과 동시에 아이 둘을 낳고 키우느라 화려한 경력은 뒤로 하고 집에 매여 사느라 소위 말하는 <경단녀>가 되었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 50대 후반의 나이. 
아이들은 잘 커서 나름 독립이란 것도 했는데 참 이상하게 우리집 가정 경제는 나날이 기울어 안정되어 있어야 할 50대의 나이에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을 해야만 하는 형편이 되었다. 

남편의 사업실패 2번. 신용불량자가 되어 빚에 허덕이던 시간들... 

어느 정도 정리하고나니 내 나이 쉰여섯. 

소방 기술사와 소방시설 관리사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물질의 어려움으로 지속하기 힘들어 결국 취업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여기 저기 이력서를 제출하고 사람인등 인터넷 구인 구직란을 뒤져가며 백방으로 알아 보았으나 50대 후반의 경단녀를 써주겠다는 업체는 없었다. 

너무 암담해서 자격증을 활용해 취업하겠다는 욕심을 내려 놓고 국수 체인점 주방일을 하고자 이력서를 제출하고 면접까지 봤는데 거기서도 탈락! 시원하게 고배를 마셨다. 이유는 먹물이 좀 짙어서? 
뭐해봤냐 묻길래 자격증 공부 하다 왔다고 하니 바로 탈락. 한달 190만원을 받을 수 있는 일자리였고 나름 어렵지 않다고 생각되어 기대를 잔뜩하고 있다가 떨어지니 자괴감이 물밀듯이 밀려 왔다. 

그동안 나는 뭐하고 살았지? 왜 이렇게밖에 살지 못했지? 하다못해 식당 주방아줌마로도 취업이 안되는 나란 존재... 너무 한심하고 어이가 없어서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렇게 또 몇달이 흘렀고... 구인란을 보다가 건설현장 소방안전관리자를 구하는 건설회사를 찾게 되었다. 그런데 이럴수가! 


그 옛날 설계 사무실에서 근무할 때 거래하던 건축사 사무소 소장님이 건설회사로 크게 성공했는데 바로 그 곳이다. 얼른 이력서를 제출했다. 연락이 왔다. 면접을 봤고 재취업에 성공했다!!! 
나 말고도 이력서를 제출한 남자들 두어명이 있었는데 소방설비 기사 자격증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란다. 그런데 내가 합격하고 그들이 떨어진 이유. 소방안전관리자 자격증이 없었기 때문. 
소방안전원의 3일 교육을 받으면 누구나 제한 없이 응시하여 취득할 수 있는 손쉬운 자격증이 소방안전관리자(옛 방화관리자) 자격증이다. 거기에 비해 소방설비 기사는 짧아도 1년이상 죽어라 공부해야 간신히 취득할 수 있는 자격증. 그러다 보니 이 사람들은 회사에 그러더란다. 일단 취업만 시켜주면 바로 소방안전관리자 자격증은 딸 수 있으니 뽑아만 달라고. 

그러나 22년 12월부터 시행하는 건설현장 소방안전관리 제도는 시행 초기 유예제도로 소방설비기사 자격증 소지자가 소방안전원에 가서 자격증을 제시하면 그냥 발급해  주던 시절이었다. 처음 1년은 그랬다. 그리고 그때는 그렇게 자격증을 시험없이 그냥 발급해 주던 시절이었는데 그들은 이 사실을 몰랐던거다. 당연히 회사에서는 알고 있었고 그러다보니 소방안전관리자 자격증까지 갖고 있던 나를 뽑아 준거다. 

이건 운이라고 해야 하나? 나름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란 명언이 결국 사실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달까? 

아무튼 그렇게 눈물겨운 노력 끝에 23년 11월 20일부로 1,100세대가 넘고 공사비 4,200억의 아파트 건설현장의 소방안전관리자가 되었다. 

소방안전관리업계의 시조새. 내가 하는 업무 시스템이 곧바로 회사의 전통이 될 첫번째 주자. 
내 뒤로 2곳의 현장에 소방안전관리자가 2명 더 입사했고 그들에게 각종 자료와 정보를 제공해 주는 선배로 살고 있다. 

나름 졍규직으로 입사헸기에 정년도 보장되는데다 얼마나 운이 좋은지 마침 짓는 아파트 건설현장이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200m 떨어져 있다. 출,퇴근에 걸어서 10분.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조건이다. 

거기에 연봉은 또 어떻구...  우리 현장의 다른 사람에 비해 좀 낮은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월 세금공제하고 월 400만원이 넘는 급여를 받고 있으니 재취업의 완벽한 성공케이스라고 하겠다. 

벌써 현장에 근무한 지 1년하도고 6개월. 

연봉 재계약도 마쳤고 작은 금액이지만 인상도 되었고, 소방안전관리자의 업무 특성상 업무 강도도 매우 낮은 편이기에 재미있게 일하고 있다. 

50대 후반?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이젠 소방 기술사 자격증을 위해 앞으로 2년동안 피땀을 흘려 볼 일이다. 파이팅하자!!